아직도 살아 있는 식민사관
한민족은 1945년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지만, 식민사학의 잔재는 떨쳐내진 못했다. 해방 후 한국 사학계가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식민사학의 주구 노릇을 하던 몇몇 학자와 그 후예에게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8백만 이상의 동포를 참살한 일본 제국주의가 주장한 식민사관을 실증사학이라는 가면 아래 교묘히 숨겨 그대로 수용하였다. 나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식민사관을 옹호하고 변론하며 자국의 역사를 파괴하는 행위의 수치스러운 일을 자행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한사군 재在한반도설’이다. 일제는 대동강 유역에 점제현 신사비라는 유물을 조작하고, 그 비석을 한사군 유물로 내세우면서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정하였고 한국 사학계는 그 조작설을 그대로 따랐다. 최근 비석재질의 분석결과 위조된 유물임이 드러났지만, 한국인들은 한반도 내 평양 주변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배우고, ‘낙랑·임둔·진번·현도’라는 이름을 반세기가 넘도록 열심히 외우고 다녔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중국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설을 동북공정에 적극 활용하여 2,100여 년 전 한나라 때의 중국 영토를 한강 이북까지 확장하였다. 중국의 이 허황한 주장이 서양의 세계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너뜨리려면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국사의 뿌리를 뽑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과 일본의 식민사관은 남의 역사를 강도질하는 패악의 근원이다.
한·중·일의 서로 다른 조선관
한국은 단군왕검이 세운 ‘단군조선’을 말하는 반면, 중국은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일본은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을 말한다.
기자는 중국이 주장하듯 과연 조선이란 나라의 왕이었을까?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기자를 상나라의 왕족이라 하면서 “기자箕子의 기箕는 국명國名이고 자子는 작위의 명칭이며 기자의 이름은 서여胥餘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기자는 기국箕國의 통치계급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기자가 설사 왕이었다 하더라도 기국을 다스린 왕이었을지언정 고조선을 다스린 왕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기』 가 말한 기자조선은 그후 중국 역사서에서 역사적 사실로 굳어졌다. 진晉나라 때 진수陳壽(233~297)가 쓴 『삼국지』는 『위략魏略』을 인용하여 고조선 말기에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기준箕準을 기자의 후예로 기술하였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은 중국이 날조한 기자조선을 한민족사의 뿌리로 여기고 기자를 은인으로 받들었다. 기자는 고조선의 서쪽 변두리를 맴돌았을 뿐 한반도 지역으로 넘어 온 적이 없건만, 고려 때 송나라 사신이 “그대 나라에 기자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자 황급히 서경(평양)에 가짜 기자묘와 기자사당을 만들었다. 또한 서경의 반듯한 도로 흔적을 기자가 만들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증거로 간주하였다. 요즘 국내 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을 중화주의사상에 빠진 중국이 지어낸 것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은 왜 기자조선이 아닌 제3의 또 다른 조선을 만든 것일까? 중국의 기자조선은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던 BCE 12세기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BCE 12세기부터 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을 일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는 아직 일본이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로서 조선을 일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일본은 BCE 2세기 때 인물인 연나라 사람 위만을 조선의 창시자로 앉혔다. 위만은 원래 노관盧綰의 부하였다. 연왕燕王 노관은 한고조 유방과 동향이자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인물로 한고조가 나라를 개창하는 것을 도와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BCE 195년 노관이 여태후呂太后의 숙청을 피하여 흉노 땅으로 도망가자, 위만은 고조선 땅으로 피신하였다. 번조선 왕 기준은 위만을 불쌍히 여겨 국경의 수비대장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위만은 은혜를 배신하고 모반을 일으켰고 급습을 당해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도망한 준왕을 대신하여 위만은 번조선의 왕이 되었다. 일본은 위만정권을 위만조선으로 격상시키고 이것을 조선 역사의 시작으로 정하였다. 게다가 일본은 위만조선의 위치를 요동반도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양 이북으로 비정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은 일본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진정한 조선, 단군조선
한국인의 진정한 조선은 국조인 단군왕검이 고유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세운 단군조선이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2,096년에 걸쳐 마흔 일곱 분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역사 교과서는 하나같이 단군조선의 건국 사실만 말할 뿐 마흔일곱 분 단군의 치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광복 7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아직 빈껍데기 역사만을 가르치고 배울 따름이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가 안고 있는 대명제는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한국사의 면모를 바로잡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