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한국 교육무용계의 대부 파조 이호순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무용과인 서울예고,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창설!

파조 이호순의 저서 '새무용' 중에서


(전국=한국드론뉴스닷컴) 손윤제기자 = 잊혀져 가는 한국 교육무용계의 대부 파조 이호순선생!


파조 선생의 본명은 이호순(李浩舜, 1926년 서울 생)이다. 무용계에서는 본명보다 파조(波鳥)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은 무용가들, 이론가들, 교육자들이 무용계의 발전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으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파조 선생은 일본에 있는 체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이화여고에서 율동교사로 재직하면서부터 학교를 통한 무용 보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첫 결실은 서울예고에 무용과를 신설하여 전문무용교육의 기반을 마련하는데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에 부임한 이래로 김백봉, 안제승, 은방초, 임성남, 임을파 등 당시 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무용가들을 강사로 영입하여 그들이 학교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대학 무용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고와 서울예고에서 무용을 전공한 학생들이 대학까지 연계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당시 대학에는 무용과가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한 학생들은 무용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야만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파조 선생은 문교부에 대학 무용과 창설을 건의하였고,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무용과인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창설이라는 결실을 이루었다. 이렇듯 대학 무용교육의 시작은 그 전까지의 학교 무용교육을 대변한 서라벌예술대학과 서울예술고등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의 무용교육을 발판으로 삼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파조 선생은 혈서를 쓰면서까지 문교부에 무용과 독립을 요청하여 대학 무용과가 개설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당시 학문 및 예술 활동의 모법이었던 『문예진흥법』의 11조 “문예라 하면 문학, 미술, 음악 그리고 연예”라는 조항에 무용이 독립적으로 포함된 개정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일조하였다. 그는 해방직후 무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무용계에 인재가 드물었기 때문에 무용이 발전을 하려면 무용을 독립된 학문으로서 정립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무용이 광대 혹은 기생들이 춤추는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극복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전공과목과 똑같이 이론과 실제의 체계를 잡아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파조 선생은 매스게임을 보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다수의 저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교육무용』(1954),『새무용』(1957),『한국아동정서교육전집』(1960) 등이 있다. 출판되고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구술자도 보관하고 있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중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서 3권의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지금은 몇몇 도서관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한 책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초·중·고등학교의 운동회, 학예회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매스게임, 포크댄스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사범학교, 대학의 체육교육과에서 지도서로 많이 사용되었다.

구술자는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직접 '투스텝'호핑스텝' 등의 몸짓과 손동작을 보여주기도 하셨다. 채록의 검토를 위하여 다시 찾았을 3권의 책을 복사하여 전해드렸는데, 너무나 기뻐하시며 한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무용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여전함을 느낄 있었다.


파조의 무용교육 캐치프레이즈였던 ‘교육무용은 이론과 방법론은 있어도 형태는 없다'


또한, 파조 선생은 1955년 현 무용협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무용예술협회를 마산의 김해랑과 함께 조직하였으며 무용학회, 무용교육총연합회 등의 조직에도 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모델협회를 발족시키고 미스월드유니버스티대회를 개최하는 등 무용 이외의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세계평화상 수상, 1985년


현재 무용계의 후학들 중에는 파조 선생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무용계가 존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 주신 분들, 혹은 은퇴한 무용가들은 세월이 지나면 망각의 강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의 생애와 경험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 없는 현재,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망각의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그 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근현대 한국무용의 역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파조 선생 역시 무용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 구술 채록은 풍부한 성과와 함께 새로운 과제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파조 선생이 우리 무용계에 남긴 업적에 비하여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아쉬움, 선생의 기억이 지금보다는 생생할 때 이와 같은 연구가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무용계 원로들의 구술채록 작업이 확대되어 그분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2008년 아르코예술정보관에서 진행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사업에서 무용분야 구술자는 “김백봉/육완순/김진홍/강선영/김매자/김문숙/김옥진/김정욱/김현자/김혜식/민준기/배정혜/엄영자/엄옥자/유옥재/유정옥/유학자/이숙재/이애주/이정희/이흥구/ 정승희/조흥동/최청자/파조” 모두 25명이다.


-민현주(강릉원주대학교 체육과 교수)의 파조 이호순 구술채록 중에서-

정천권 기자
작성 2021.12.24 06:24 수정 2021.12.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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