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손놀림이나 과장된 몸짓 대신, 작곡가가 악보에 숨겨둔 진심을 조용히 들려주는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클래식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그의 연주 앞에서는 현란한 '기교'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평론가들이 그를 '사색하는 피아니스트', 혹은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 깊이 있는 별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건우의 음악 여정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열 살이던 소년 백건우는 해군교향악단(지금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강렬한 데뷔 무대를 가집니다. 흥미롭게도 그 역사적인 첫 무대는 피난처였던 부산의 한 여고 강당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주회를 열어 무소륵스키의 난곡 '전람회의 그림'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며 일찍이 천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1961년, 그는 음악을 더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세계적인 명문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목 로지나 레빈을 사사했고, 1967년에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빌헬름 켐프 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 아래서 실력을 다졌습니다. 쉼 없는 노력은 결실을 보아, 같은 해 나움부르크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부조니 콩쿠르 입상 등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뚜렷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삶에서 음악만큼이나 극적인 사건은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찾아왔습니다.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세계 초연 공연장,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던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 윤정희를 한 청년이 친절하게 안내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백건우였습니다. 두 사람은 19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운명처럼 재회했고, 비밀 연애 끝에 1976년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술가 부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결혼 이듬해인 1977년, 부부는 생후 5개월 된 딸과 함께 유럽 체류 중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연주 요청을 받고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에 도착했으나,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백건우의 기지와 단호한 판단 덕분에 미수에 그치며 24시간 만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그레브 납치 미수 사건'은 당시 동서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외 활동을 하던 한인 예술가들이 얼마나 위태롭고 엄혹한 현실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습니다.
삶을 흔드는 격랑 속에서도 백건우는 결코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86년부터는 대도시 중심의 화려한 공연 문화를 벗어나, 클래식을 접하기 어려운 한국의 중소도시와 섬마을을 직접 찾아가는 연주회를 시작했습니다. 소외된 곳에 음악을 전하겠다는 이 신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그의 예술 세계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세계적인 레이블 데카(DECA)와 손잡고 바흐, 쇼팽 등 거장들의 작품을 음반으로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피아노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녹음은 음악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성과로 꼽힙니다. 같은 해 프랑스 정부는 그의 예술적 공로를 인정해 예술문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는 2007년과 2017년에 무려 8일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강행군 리사이틀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습니다.
그의 행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6년 데뷔 60주년에는 관객들의 사연과 신청곡으로 무대를 채운 관객 친화적 리사이틀 '백건우의 선물'을 열었고, 쇼팽과 슈만, 스페인 작곡가 그라나도스의 음악까지 끊임없이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2023년 1월, 반세기 가까이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예술적 지지자였던 아내 윤정희가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깊은 슬픔이 찾아왔지만, 그는 슬픔마저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듬해인 2024년에는 평생 처음으로 온화하고 순수한 모차르트 앨범을 발매했고, 2026년 여든 살을 맞이한 올해는 새 앨범 '슈베르트'와 함께 데뷔 70주년 전국 투어의 막을 올렸습니다. "음악인에게 은퇴란 의미가 없다"라던 그의 말은 삶 그 자체로 증명된 셈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묵묵히 걸어온 그의 발자취를 보면, 왜 사람들이 그를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는 연주자'가 아니라 '거장(Master)'이라 부르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거장이란 오랜 세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후대의 기준이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백건우는 "얼마나 세련되게 치느냐"보다 "이 음표를 통해 무엇을 말하느냐"를 평생 고민해왔습니다. 베토벤에서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쇼팽에서는 시적인 정서를, 라벨에서는 투명한 색채를 다채롭게 길어 올리는 그의 능력은 삶의 깊이가 빚어낸 선물입니다.
오늘은 거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나마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폭풍」 제3악장 알레그레토)













